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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서

굼벵이에서 기둥으로 (개정증보판) - 죽는 하나님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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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명 굼벵이에서 기둥으로 (개정증보판) - 죽는 하나님의 일
소비자가 24,000원
판매가 21,600원
제조사 요나고래출판부
원산지 국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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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굼벵이에서 기둥으로 (개정증보판) - 죽는 하나님의 일
저자/출판사김평강/요나고래출판부
ISBN9791198102393
크기152*225mm
쪽수482p
제품 구성낱권
출간일2023-05-15
목차 또는 책소개상세설명참조


책 소개

이 책을 보면
하나님을 번영과 내 소원의 원천으로 삼고자 하는 자는 무당집으로 가야 할 듯하다.
반면에 하나님을 나를 죽이시는 분으로 고백하는 자는 골고다의 기둥으로 인도될 것 같다.

개밥에 도토리처럼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외톨이가 본 성서 해석이다. 그러니 자유롭고 독단적이며 독특하다 못 해 외경(外經)스럽기까지 하다. 오랜 전통과 제도와 틀을 완전히 깨버렸다. 익숙함이 아니라 낯설기와 새로움의 눈을 가지게 한다. 그동안 교육받고 습득했던 기존의 성경 해석의 지식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순간도 맞을 것이다.

저자는 우주 창조의 원리와 질서를 성서 해석의 기본 틀로 두고 하나의 진리만을 찾아 나선 듯하다. 태양계를 만드신 하나님이 성경의 집필자라는 확신 위에서 이 책은 만들어졌다. 태양계의 작동원리가 있듯이 성경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분만을 위한 완벽한 무대장치로 꾸며졌다고 한다. 그래서 성경은 나를 위한 책이 아니라, 그 한 분만을 증언하고 고백하게 하는 하나님의 일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그 하나님의 일은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죽이시는 일로 충만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선악과나무는 우리와 하나님의 아들이 함께 죽는 십자가의 기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 열매를 먹어야 했으며, 그것은 곧 그 죽음의 열매를 통해 처절한 자기 죽음을 경험하고 다시금 아버지의 집으로 귀환하는 사랑의 메커니즘(작동원리)이었다고 한다.

달과 같은 저녁과 밤을 죽음으로 해석하고, 태양과 같은 아침과 낮을 부활로 해석했다. 그래서 십자가는 유대인의 시간인 저녁에 서야 했으며, 죽음의 양식인 유월절 고기와 메추라기, 오병이어도 모두 저녁에 먹는 구약의 밤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죽음의 양식 뒤에 오는 새벽 만나와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차려 주신 밥상은 모두 아침의 양식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저자는 태양계 안에 담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성경에 적용시켜, 문학적 기법으로 감춰놓은 진리의 세계를 육의 눈이 아니라 영의 눈으로 찾고 구하고 두드려 발견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다소 거부감이 들어 멀미가 날 수도 있겠지만, 성도들에게는 신선한 도전으로써 어쩌면 새 물을 만나 영혼의 갈증을 해갈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성경에 새롭게 밑줄을 긋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출판사 서평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를 여섯 번 반복하는 인간의 모순과 이중성!
여리고 성도 하루에 한 번 6일을 돌아야 했다. 죽은 줄로 알았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철옹성 같은 여리고 성! 바로 ‘나’였다. 어둠과 빛이 공존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 창조의 섭리와 숙명!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끝내 십자가에 달리신 아들 예수로 인해 저녁이 없는 일곱 번째의 아침을 이루었다고! 여리고 성도 7일째에 무너져 내렸다. 하나님은 기필코 우리의 밤을 죽이시고 반드시 일곱 번째의 부활의 아침만 있는 갈릴리에서 차려 주신 아침밥을 먹게 하신다는 소망을 품게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죽이신다고 한다. 그것이 구약의 밤이며, 밤에 먹었던 유월절과 메추라기 고기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구약의 고기를 먹고 죽어야 하는 육신의 밤이 지나면 그리스도로 살아나는 영의 아침이 밝아온다고 했다. 이는 율법과 죄로 먼저 죽고, 은혜와 진리로 다시 사는 구조로 읽힌다(요 1:17).

그래서 그 죽음의 식사가 끝나면 생명의 만나, 곧 아침의 양식이 새벽에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아침에 먹는 이 양식이야말로 우리가 영원히 먹어야 할 부활의 그리스도였다.

이처럼 저자는 성경을 두 개의 축으로 설명했다. 먼저 먹고 죽어야 하는 선악과나무(예수), 그리고 그리스도로 다시 살아나는 생명나무였다. 그래서 선악과는 하나님이 아담을 죽이기 위해서 창조했다는 저자의 새로운 관점은 그간 인간의 입장에서 선택한 나무로만 해석한 나머지 인간 타락의 책임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있다는 기존의 논리를 흔들어 놓았다.

그래서 선악과 안에는 인간이 먹고 죽어야 하는 십자가의 나무가 숨어 있었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어놓았다. 그 인간의 죽음 이야기가 창조의 하나님이 죽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그 죽는 하나님의 자리에서 다시 사는 생명과 부활의 나무가 있었다는 뜻이다. 선악과로 죽고, 생명나무로 사는 그림이 펼쳐질 성경의 두 문이었던 셈이다. 이 두 그림은 창조의 어둠과 빛, 저녁과 아침, 땅과 하늘,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 바다와 뭍이라는 두 쪽으로 나뉠 그림과도 같았다. 그렇지만 이 두 개의 세계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을 통해 하나로 통일되었다고 한다(엡 1:10). 그래서 비록 우리 인간은 저녁과 아침이라는 두 얼굴의 존재로 살아가지만 끝내 저녁이 없는 일곱 번째의 아침을 이루신 하나의 그리스도로 다시 창조된다고 이 책은 밝히고 있다.

그런데 그간의 교회와 성도들은 예수의 힘만을 빌어 자기가 죽는 밤을 잊은 채 삼손이 취했던 사자의 꿀만 있는 아침만을 바랐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래서 하늘에서 비처럼 내렸던 떨어져 죽는 깟씨, 만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다시금 애굽으로 돌아가 자기 자랑의 성인 “비돔”과 “라암셋”을 인간 노력의 무가치성을 대변하는 벽돌로 건축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래서 만나는 반드시 죽음의 바다인 홍해를 건넌 후, 자신이 의지했던 양식이 다 떨어졌을 때 하늘에서 내렸다고 저자는 분명히 상기시키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벽돌로 세우는 자기 힘의 건축을 중단하고 죽음의 바다를 건너, 태초의 양식이었던 죽어야 사는 씨를 먹는 아침의 존재로 거듭나 성경을 올바르게 읽기를...

결국 저자는 굼벵이와 지렁이, 짐승처럼 아래의 물과 풀만이 참 양식인 줄 알았던 교회와 성도에게 윗물과 죽는 씨를 먹는 하늘을 지향하는 기둥의 사람들이 되도록 이 책은 이끌고 있다.

이 책은 52주라는 1년의 시간에 착안해서 모두 52개의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다. 1년이라는 반복되는 사이클 속에 사는 인생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가지고 품고 살아야 하는가를 오직 하나의 주제만으로 완성된 책이다. 그 하나의 주제의식은 죽는 하나님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간의 교회와 성도들은 자신들이 모두 살고자 하는 사람의 일에 착념하여 살았다고 이 책은 말한다. 마치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정신처럼 사람이 바라고, 사람이 원하는 인본주의를 추구했다고 지적한다.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잘되고, 인간다움을 실천해서 좋은 평판을 받을 수 있는가에 더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불렀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자기 번영과 자기 힘을 지키기 위해 빚어낸 구약의 신을 찾고, 히스기야 왕 때까지도 백성들이 품고 있었던 놋 뱀, 느후스단 앞에서 ‘비나이나’를 외쳤다는 의미였다. 이는 십자가 위에서 죽은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죽는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알면 되는데, 그 십자가 자체에 무슨 효능과 능력이 있는 줄 여기고 우상처럼 섬기고 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모세에게 알려준 모든 제사는 모두 자기 자신이 삭제되거나 부정되어야 했는데 오히려 자기를 살찌우는 투자금 정도의 어린양 영수증 예배였다고 이 책은 두들기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시내산 위에서 내려온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폭로시키고, 너는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밝혀 줄 선악과와도 같았다고 한다. 그러나 산 아래의 인간들은 처음의 아담처럼 자신의 어둠을 밝히고 흙투성이인 자신의 존재적 자리를 비추는 말씀을 받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가치와 목적을 투영시킨 자기의 신만을 필요로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뜻과 의지로 조정되고 덧입혀진 자기 숭배의 신을 탄생시켰다고 이 책은 밝히고 있다. 내 돈으로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내 능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금송아지처럼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저 내가 원하는 것만 내어놓으면 된다는 신이었다. 이것이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를 위로해 줄 금송아지 예배였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이것이 에덴동산부터 존재한 짐승, 뱀의 논리였다고 한다. 선악과를 먹고 반드시 죽는 존재로 지음 받았던 인간에게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왜곡했던 비진리의 논리에 잡혀 살아왔다는 의미였다. 곧 하나님의 일은 인간을 죽이시는 것이었지만, 반대로 마귀의 일은 인간을 긍정하고 살리는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이 책은 자기 부정, 자기 부인, 자기 죽음만이 진리의 그리스도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자각은 십자가 위에서 내 인생관, 내 세계관, 내 머리가 가시관으로 처절하게 박힐 때 또한 내 가능성의 두 손과 내 능력 발휘의 두 발이 못에 박혀 어떠한 힘도 쓸 수 없는 무력한 자가 됐을 때만이 가능할 것이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결국 이러한 자기 해체가 이루어졌을 때 노아 홍수 때의 40일의 비와 모세의 시내산 40일의 금식과 광야 40년의 세월, 그리고 예수님의 광야 40일의 금식이 이 땅을 부정한 진리의 비와 우리를 죽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40일 동안 탐지하고 자신들을 거인들 앞에 선 메뚜기로 평가절하했던 것처럼 자신들을 세상에서 맞아 죽는 메뚜기로 인식하길 저자는 바라고 있다. 이러한 “메뚜기 자아”로 가나안을 읽으면 가나안은 더는 젖과 꿀이라는 자기 번영과 인간 축복의 땅이 아닐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젖과 꿀은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기가 먹을 “젖과 꿀(사 7:14, 15)”이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임마누엘”이었다. 곧 자기를 죽여 우리에게 생명의 젖과 꿀을 내어 주실 예수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삼손과 같은 사자들을 반드시 죽여 어린양의 젖과 꿀로 먹이겠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가나안은 자기의 존재적 가치가 부정되고, 죽고자 하는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신 이유를 이렇게 밝히셨다고 한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신 7:6-7)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작아짐의 원리에 있었다. 그렇지만 40일의 정탐의 기간을 자신이 부정되고 작아지는 시간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10명의 정탐꾼들은 결국 가나안 입성이 불허되었다. 반면에 인간의 힘과 가능성이라는 자기 판단과 자기 경영을 부정했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가나안 입성을 허락받았다. 특히 두 사람은 가나안 거인들을 자신들의 “먹이”로 고백했다(민 14:9). “먹이”는 히브리어로 ‘레헴’이다. 뜻은 음식, 떡이었다. “베들레헴”, 곧 “하나님의 떡집”과 같은 어원이다. 이는 하나님의 집에서 나오는 양식은 거인 같은 ‘나’가 먹히고 또 먹혀 작은 메뚜기가 되는 것이라는 의미였다. 다시 말해 내 안에 사는 거인의 머리가 잘려 나가고 손발이 묶이는 죽음이 우리의 양식이라는 뜻이다. 곧 골리앗 같은 나를 죽이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먹어야 할 진짜의 떡이라는 의미이다. 결코 우리가 공룡이 되는 양식이 아니었다. 멸시받고 버림받고 채찍에 맞는 메뚜기로 사는 양식이었다.

예수님도 당시 세계의 지배자인 ‘가이사 아구스도’의 영광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외양간 말구유”에 자신을 짐승 같은 우리의 먹잇감으로 격하시키셨다(눅 2:12). 이는 비천한 탄생의 몸으로, 마치 거인들 앞에 선 메뚜기로 우리의 영원한 떡과 양식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과 같았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이 거인 같은 나를 부수시고 죽이실 때 우리는 메뚜기가 되는 그 죽음의 양식을 잘 먹어야 한다고 말이다.

결국 가나안은 거인 같은 내가 꺾이는 자기 죽음의 전쟁터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세상 왕으로 살고자 하는 내가 죽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살아나는 땅이 가나안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줄기차게 말한다. 성경에서 우리의 존재적 가치를 거인들의 발자국으로 읽지 말고, 자신들을 메뚜기와 같은 존재로 낮추어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만을 기다리는 자로 읽을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이 땅의 힘과 번영이라는 기준과 가치를 따라가지 말고 오직 노아의 윗물과 모세가 받았던 산 위의 말씀과, 하늘에서 내린 만나와 예수님이 전해주신 산상수훈의 팔복을 향해 믿음의 눈을 위로 향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결국 이 위는 이 땅을 죽이고 올라간 성령의 다락방이었다고 말한다.




목차


#에피소드 1. 굼벵이에서 기둥으로
#에피소드 2. 씨와 푸른 풀
#에피소드 3. 가죽옷에서 세마포 옷으로
#에피소드 4. 노아의 방주
#에피소드 5. 우리를 부르신 이유
#에피소드 6. 히브리인
#에피소드 7. 바늘귀로 들어간 야곱
#에피소드 8. 벽돌과 만나
#에피소드 9. 메추라기
#에피소드 10. 불로 녹인 금송아지 신
#에피소드 11. 물두멍
#에피소드 12. 여리고성
#에피소드 13. 질그릇
#에피소드 14. 사르밧 과부와 수넴 여인
#에피소드 15. 나봇의 포도원
#에피소드 16. 쇠도끼와 나뭇가지
#에피소드 17. 엘론과 아일
#에피소드 18. 마아세르(십일조)
#에피소드 19. 성경
#에피소드 20. 예수 그리스도
#에피소드 21. 기록되었으되 1
#에피소드 22. 기록되었으되 2
#에피소드 23. 기록되었으되 3
#에피소드 24. 양의 우리에서 꺼낸 복음
#에피소드 25. 갈릴리
#에피소드 26.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에피소드 27. 너는 율법을 어떻게 읽느냐
#에피소드 28. 십계명 제7계명
#에피소드 29. 열 처녀 비유
#에피소드 30. 옛 주인과 새로운 종(달란트 비유)
#에피소드 31. 양은 오른편 염소는 왼편
#에피소드 32. 율법을 벗고 의를 덧입자
#에피소드 33. 주기도문
#에피소드 34. 젖과 밥
#에피소드 35. 조각과 몸
#에피소드 36. 성전세
#에피소드 37.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에피소드 38. 이제는 지팡이, 주머니, 전대, 양식, 돈, 두 벌 옷을 가지고 가라
#에피소드 39. 방언
#에피소드 40. 베드로와 가룟 유다
#에피소드 41. 너는 죽을 때까지도 강도다
#에피소드 42. 다시 찾은 153
#에피소드 43. 팔복 1
#에피소드 44. 팔복 2
#에피소드 45. 팔복 3
#에피소드 46. 팔복 4
#에피소드 47. 팔복 5
#에피소드 48. 팔복 6
#에피소드 49. 팔복 7
#에피소드 50. 팔복 8
#에피소드 51.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반석 위에 지은 집
#에피소드 52. 구제와 다락방



김평강 저자 소개

: 김평강 목사는 20대 중반까지 성령의 은사와 신비주의에 경도되어 기도원을 들락거렸다. 말씀 없는 초월과 뿌리 없는 꽃잎 속에서 맹신주의와 감정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늦모처럼 제철은 아니지만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르네상스와 같은 인문주의 문예부흥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철학적 이성의 힘은 종교적 신념과 신앙의 밧줄을 풀어 버렸다.

비대해진 자아는 태양에 붙잡힌 공전주기를 박차고 스스로의 힘만을 의지한 채 떠돌았다. 그러다 여기저기 운석에 맞아 구멍 나고 파인 몸을 가지고 마침내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들어갔다. 저자는 이곳에서 힘과 번영을 추구했던 소비자 중심적인 영미 신학보다는 인간의 이성과 성서 해석의 자유를 추구했던 독일 자유주의 신학을 따라갔다. 그 결과 인본주의가 하늘로 오르는 사닥다리를 부러뜨릴 지경이었다. 영혼의 기운이 빠져나간 자의 짓눌림은 바위였고 연자 맷돌이었다.

제주로 내려가 목수가 되어 10여 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에 이스라엘을 여행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우상의 신전들로 구멍 나고 깎여진 큰 바위산 앞에서 상처 난 예수님의 몸이 겹쳐 보였다. 마치 예수님이 도마에게 못 박힌 손과 찔린 옆구리를 보여 주시듯 구멍 나고 파인 바위산을 보여 주신 듯했다. 왜곡된 사상과 믿음으로 교회를 구멍 내고 훼손시켰던 지난날과 조우했다. 그리고 상처 난 바위산 쪽으로 당겨 안아주시는 듯했다.

“괜찮다! 다시 시작해 봐!” 그제야 저자는 고백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때부터 온 만물과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만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이 탄생한 시작점이었다. 지금은 교회 개척을 준비하며, 요나고래 출판사 대표로 사역하고 있다.



책 속으로


P. 29
인간의 6과 하나님의 7을 요한복음을 여는 열쇠로 주셨다. 태초에-1(요 1:1), 이튿날-2(요 1:29), 또 이튿날-3(요 1:35), 이튿날-4(요 1:43), 사흘째-7(요 2:1), 곧 창조의 7일째에 약속하신 안식을 우리와의 혼인으로 이루셨다. 인간 율법의 정결을 상징하는 항아리 6개에 물을 가득 채웠던 하인들의 모습 속에서 창조의 6일을 만드신 분, 우리의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읽어내야 한다. 그렇지만 그 여섯 개의 항아리는 우리의 불가능의 물과 율법의 물이었다. 닦고 또 씻어도 계속해서 때가 묻는 존재라는 것을, 또한 율법을 계속해서 어기고 깨는 존재라는 것을 항아리 6개 안에 담아 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하 깊은 곳까지 내려가 잔치에 필요한 물을 준비해 놓은 하인들의 땀방울 속에서 우리의 한계와 우리의 정체를 읽어내야 한다. 그 하인의 몸이 우리의 몸(육)이며, 육신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이셨다.


P. 60
인간 창조의 시간은 여섯 번째의 시간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를 숙명적으로 여섯 번씩이나 반복하는 불안과 분열의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도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쏟아졌다. 인간의 시간, 땅의 시간인 여섯째를 삭제시키는 의미가 노아의 나이 속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P. 96-99
“씨름하다”의 히브리어가 답을 준다. ‘아바크’이다. ‘하나님의 집은 바늘귀’라는 뜻이다. 밧줄은 바늘귀를 통과하지 못한다. 가는 실만이 바늘귀를 통과한다. 자신이 굳게 쥐었던 주먹을 펴야 한다. 꼬인 실타래를 한 가닥으로 만들어야 한다. 힘이 아니다. 소유가 아니다. 내가 아니다. 내려놓음이다. 포기이다. 줄여야 한다. 얇아져야 한다. 복잡함을 단순화시켜야 한다. 정리해야 한다. 얍복강 앞에서 자기를 부정당한 옛 야곱이 하나님의 바늘귀에 걸렸다.
예수님도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쉽다고 했다. 조건은 등에 멘 짐을 다 내려야 한다. 무릎도 꿇어야 한다. 고대 근동에서는 성읍의 문을 통금시간에 맞춰 닫았다. 늦게 온 사람과 낙타는 어떻게 할까? 다시 큰 문을 열기에는 번거롭다. 낭비이다. 그래서 쪽문을 두었다. 쪽문이 바로 바늘귀이다. 낙타가 쪽문 안으로 들어가려면 무릎을 꿇고 양쪽에 차고 있던 짐보따리를 다 내려놓아야 한다. 준비가 끝나면 주인이 쪽문 안쪽에서 낙타의 목줄을 잡아당겨 들어오게 했다. 야곱이 그랬다. 하나님의 집, 바늘귀로 들어갔다. 통과할 때 낙타도 아프다. 야곱도 아팠다. 힘줄이 끊어졌다. 얍복강에서 야곱은 죽었다. ‘다시는 네 힘으로 살지 말라’라는 메시지를 깨달았다. 실이 바늘귀를 통과하여 매듭이 지어지는 순간 아픔이 있다. 그러나 바늘 되신 하나님께 묶이는 순간 승천이다. 자기를 버려야 생기는 능력이다. 하나님 앞에서 내 자아가 죽는 것이 능력이다. 너는 이제 네 모든 능력이 상실된 바늘에 묶인 실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야곱은 절뚝거리는 자로 오직 하나님의 지팡이만 의지하는 자로 그려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야곱이 받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자가 아니다. 정확한 번역은 ‘하나님과 더불어 힘을 얻어 강하게 된 자’이다. 바늘과 실이었다.


P. 102
만나는 순간이며, 짧은 만남이었다. 이슬로 왔다가 햇볕이 나면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비처럼 내렸다고 했다. 우리의 육적 자아를 깨우는 두들김이었다. 영원할 것 같은 땅을, 한이 없을 것 같은 인생의 시간을 깨부수고 때리는 빗줄기로 내렸다. 비처럼 내린 만나는 흙덩이인 내 몸을 난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만나라는 비를 맞고 우리는 무너져야 했다.


P. 107
하나님과 우리가 소유권을 놓고 줄다리기해야 하는 광야의 자리가 우리의 신앙의 자리라는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의 가축을 포기하고 밤에 죽는 메추라기를 먹으라고 하신다. 메추라기를 보며 작아진 나를, 줄어든 나를, 버려진 나를, 끝내 죽는 나를 보자. 그 죽는 고기의 밤을 통과하면 아침에 먹는 부활의 만나, 갈릴리의 조반이 차려져 있을 것이다.


P. 140
사르밧 성 과부와 나인 성 과부의 이야기는 옛 성전의 육적 아들이 죽고, 새 남편을 만나 새 성전이 되어 새 아들을 얻게 되는 기둥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P. 145
다락방으로 내려온 이 아들의 영은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고 애타게 기다린 그 아들이었다. 육체적 자아의 첫 아담이 십자가에서 죽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두 번째 아담인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수넴 여인이 다시 안은 아들은 우리가 품에 안아야 할 바로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이 땅의 육적인 아들이 죽고 올라간 부활의 다락방에 아들의 영, 성령이 내려왔다. 그곳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이었다.


p. 169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십일조는 백만 원 중에 십만 원을 드리는 십분의 일의 계산이 아니었다. ‘십’이라는 나의 모든 것의 전체를 부정하고, ‘하나’의 예수만을 긍정하고 내어놓는 것이 십일조였다. 자신의 모든 것이라 여긴 전체, 곧 ‘열’이 십자가로 죽고, 그 죽어진 자리에서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예수만을 다시 내어놓는 것이 십일조였다. 내 안에 있는 ‘십’이라는 완고한 애굽 바로 왕 같은 내 자아가 죽고, 오직 하나이신 예수만을 내 밖으로 내놓는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열’이 죽고 ‘하나’로 살아나온다는 진리가 모세의 십계명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열 가지 계명으로 죽는 우리를 언약궤 위에 뿌려진 속죄제물의 피로 덮어 버리시고 살아나게 하신 유월절의 첫 어린양, 장자이신 예수님을 모세는 알았다. 우리가 내어놓아야 할 십일조는 ‘열’이라는 말씀(구약)에서 죽고 ‘하나’라는 말씀(신약)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 열(구약)이 내 안에서 철저히 죽고, 하나의 장자(신약)로만 부활의 아침만을 맞아야 한다.


P. 283
달란트 비유는 결국 새로운 종의 출현이었다. 죽음으로 죽어 산 자가 새로운 종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돈과 이윤으로 환산된 옛 주인은 새로운 종을 바깥 어둠으로 추방하여 저주해 버렸다. 이것이 구약의 옛 주인들이 행한 죽음의 부인이며 오히려 자아의 확장과 자기를 지키기 위해 새로운 종을 이단으로 몰아 죽여 버린 것이다. 오늘도 땅에 묻힌 비밀의 1을 돈과 이윤이라는 세속적 가치로 읽지 말고 죽음을 죽어 산 자로 읽자. 내가 받은 달란트는 누가 몇 개를 가졌느냐로 서로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었다. 누가 얼마나 많은 자기 죽음을 경험했느냐가 우리가 받은 달란트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P. 371, 372
베드로의 첫 그물은 자기의 열심인 율법의 밤이었다. 율법의 밤으로 엮어진 그물로는 어떠한 물고기도 뭍으로 올라올 수 없었다. 비록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물을 내려 들어올렸지만 조각난 율법의 그물이었기에 물고기가 들어 왔어도 그 그물은 갈기갈기 찢어진 그물이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신의 깊은 그물이 산산조각나는 경험과 자아가 죽는 밤을 보내야 했다. 자기 자신이 처절하게 찢어지고, 가라앉고, 털리는 밤을 토해내야 했다. 베드로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래 나는 처음부터 어둠이고 깊음이고 밤이고 저녁이었구나!” 이 자각이 신약의 아침으로 넘어오는 분기점이었다. “나 같은 존재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무가치한 자였구나!” 이것이 갈릴리로 다시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는 신약의 그물이다. 예수님의 피가 뿌려진 거듭남의 입구, 오른편 귀였다. 우리가 그물을 내려야 할 포인트는 어린양의 피가 뿌려졌던 제사장들의 오른쪽 귓불이다. 오른편에 주님의 보혈이 흐르고 있다. 그곳만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온다.


P. 481, 482
선행과 구제로 지친 그대여! 성령의 다락방으로 올라가자. 그 다락방은 두 아들이 살아난 부활의 공간이었다. 또한 다니엘이 사자의 굴에서 살아난 자기 죽음의 다락방이었다. 그리고 그 다락방은 땅을 포기하고 하늘만 보기로 다짐한 마가의 다락방이었다. 그곳에 성령이 엘리야의 불처럼 내려왔다. 다락방에 내린 성령만이 ‘죽는 하나님의 일’들을 지지하고 응원할 것이다. 그 성령만이 우리의 육적 자아를 죽이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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